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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이 노래 알아요?
    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2023. 1. 17. 18:38

    1호야,

     

    너는 자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나 봐. 낮잠을 안자려 하고, 자고 일어나서도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에 실망해서인지) 울음을 터뜨리곤 해. 밤엔 자정까지 놀아.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은 그대로인데 늦게 자니까 많이 피곤하지. 결국 입병까지 났어.

     

    날씨가 춥다고 야외활동을 많이 안해서 그런가 싶어서 주말 오전에 체육수업을 신청했어. 체육수업은 무척 활기차. 나는 너희가 안전하게 뛰어놀게 도울 뿐인데 등이 뜨끈하게 땀에 젖을 정도야.
    그걸로도 부족하다 싶어 지난 일요일 밤엔 굳이 너희를 끌고 나갔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우리는 신나게 뛰어 다녔어. 너는 돌아오는 길에 피곤했는지 내게 업어달라고 하더라.

     

    요즘 너의 체중은 16kg 정도야. 업고 있으면 어깨나 팔이 얼얼해. 그래서 자주 업어주지 못하는데, 그날은 너무 춥고 네가 달콤한 말로 엄마를 설득해서 못 이기는 척 넘어갔어. 네가 뭐라고 말했냐하면,

     

    엄마! 전 이제 아가가 아니라서 업히면 안 되지만
    어린이도 피곤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업어달라고 하는 거에요.

     

    이런 달콤한 설득에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렇게 너를 업고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엄마 귓가에 대고 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엄마 이 노래 알아요?' 하면서 말야. 대략 '택시가 있는데 움직이지 않아서 뒤의 승용차가 빵빵 울렸다'는 내용의 가사였는데 엄마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

     

    엄마가 모르는 동요도 많으니까 이번 기회에 잘 기억하고 싶었어. 그래서 다시 불러달라고 했더니 이번엔 '택시가 고장나서 견인차가 부릉부릉 끌고 갔다'는 내용으로 가사가 바뀌었더라. 멜로디도 아까랑 조금 다르고. 아무리 들어봐도 세상에 없는 노래, 맞아. 네가 즉흥에서 만들어 부르는 노래 같았어. 왜냐면 계속 새로운 노래가 네 입에서 흘러나왔거든. 네가 매번 얼마나 가사와 멜로디를 고심하고, 예쁜 목소리로 정성들여 불렀는지 몰라.

     

    혼자 듣기가 아까워서 아빠에게 다가가 '여보, 이 노래 알아요?'하고 너의 노래를 함께 들었지. 문득 이 장면을 카메라로 찍은 듯 아득하게 느껴지더라. 너의 즉흥곡을 함께 들으며 우리 가족이 나란히 걸어가는 이 겨울 밤산책이 어쩌면 엄마가 살면서 맞이할 행복한 순간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어. 뿌듯하고, 감동적이고, 가슴 벅차고, 따뜻했어. 너희의 존재가 참 고맙고, 사랑스러웠지. 말로는 표현하지 힘들정도로 정말 많은 것들이 채워졌단다.

     

    엄마는 그날의 기억을 유리구슬 안에 넣어서 마음 속에 보관하려고 해. 너희가 말썽을 부려 속상하거나, 엄마의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꺼내보려고. 코끝의 기온은 무척 차가웠지만 귓가에는 너의 따뜻한 입김이 멜로디를 타고 쉼없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 2호는 아빠 등에 노곤하게 업혀있고, 아빠도 너의 노래를 귀 기울여 들으며 가슴 뻐근해하는 1월의 어느 일요일 밤을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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