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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 더 멀리 가보고 싶어요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2022. 12. 29. 20:14
얘들아,
지난 주말 겨울여행을 다녀왔어. 산타 할아버지가 핀란드로 돌아가기 전에 동두천 자연휴양림에서 하루 쉬시고 간다길래 한달음에 달려갔지. 산타 할아버지를 직접 보니 어땠어? 산타 할아버지가 저녁에 방으로 놀러온다고 하셨는데 너희 둘 다 여덟 시 전에 잠들어서 선물만 놓고 가셨어. 오후에 눈썰매를 타느라 피곤했나 봐.
다음 날 오전, 가볍게 숙소 근처를 산책하려고 나섰어. 그런데 너희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더라. 무려 영하 15도였는데 말야. 2호는 더 깊이 더 멀리 가보고 싶다면서 엄마 손을 끌고 앞장서서 걸었어. 평소엔 카메라만 들면 도망가는 녀석이 먼저 사진 찍어달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니 눈쌓인 숲을 탐험하는 게 좋았나 봐. 1호는 할머니와 눈밭에 주저 앉아 잣을 까느라 속도가 나지 않더라. 그래서 우리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지.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눈이 쌓인 숲은 참 조용했어. 지구와 천천히 걸으며 이것저것 살피는 시간이 참 즐거웠단다. 오롯이 자연 안에 있는 게 실감났지.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1호나 아빠, 할머니를 부르며 오고 있는지 확인했어. 우리 목소리를 들은 아빠는 손을 높이 흔들며 괜찮다는 걸 알려줬지.
메아리가 치는 것도 너희는 신기해했어. 계곡 물이 두텁게 얼었지만 중간중간 얇은 얼음 사이로 물이 콸콸 흘러가는 게 보여서 그 앞에 한참 서 있었지. 네가 눈밭 사이사이 작은 발자국들을 찾아냈어. 우린 함께 누구의 것인지 추측했지. 고양이? 토끼? 강아지? 너는 괴물인 것 같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더라.
나무에 매달린 채 얼어붙은 열매며, 겨울인데도 잎이 푸른 소나무며 너희 눈엔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였지. 산길을 걸으며 끊이지 않는 질문에 대답해주느라 엄마는 숨이 찰 지경이었어.
네 볼이 너무 빨개졌길래 겨우 달래서 산을 벗어나 놀이터로 갔어. 네가 놀이기구를 오르는 모습은 혹한기 훈련 같아. 놀이기구는 모두 꽁꽁 얼어서 표면에 눈처럼 물이 언 입자를 볼 수 있었어. 겨울왕국 영상에서나 보던 걸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하더라. 우리는 언 손으로 그걸 꾹꾹 눌러서 녹이며 또 한참 놀았지.
1호는 어땠니? 사진을 보니 키만한 나무 막대기로 바닥을 제치며 걸었던데? 스키타는 것처럼 보였어. 잣도 정말 많이 땄더라. 손시리진 않았어? 네 작은 손가락이 잣을 꺼내려고 꼬물꼬물하는 모습, 집중하느라 입술이 오물거렸을 순간을 상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더 많이 알고 싶어 하고, 제대로 해보려고하는 너희가 참 멋있어. 그럴 때면 너희 눈은 빛나. 유심히 관찰하고 오감으로 느끼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지. 그 몰입과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 양육자가 되고 싶은데 종종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너희를 멈추게 해. 그럴 때면 이 겨울숲 탐험을 떠올리며 조금 더 기다리고 함께 즐겨볼게.
그리고 실은 말야. 너희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도 무척 재밌었단다. 엄마는 할머니가 그렇게 신나하는 표정을 참 오랫만에 봤어. 너희 덕분에 잠자고 있던 모험심과 생동감이 깨어나. 우리 내년에도 서로를 돌보며 신나게, 더 깊이 더 멀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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