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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격려가 뭐예요?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2022. 11. 15. 05:19
얘들아,
엊그제 있었던 일을 적지 않을 수 없구나. 주말의 끝자락이었어. 식사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엄마와 아빠는 너희에게 밖에서 밥을 먹고 밤산책을 하고 오자고 제안했지. 흔쾌히 그러자고 같이 따라나선 너희들은 근처 단골식당에서 맛있게 스파게티와 리조또를 먹었어.
그리고 밤산책이 아니라 밤운동을 했지. 둘이 서로 잡아보라며 수십미터를 한달음에 뛰기를 수십번. 산책로가 차길과 만나니 멈추라는 말도 잘 안들리는 것 같았어. 더구나 엄마가 깁스를 푼지 얼마 안 되어 같이 뛰기는 어려웠는데도 너희 멋대로 뛰어다녀서 엄마는 낙심되고 아빠는 조금 화가 났어.
양을 모는 목동처럼 너희를 어렵게 다시 차에 태워 집에 왔어. 주차를 하고 뒷문을 열어보니 이미 너희는 벨트를 풀고 판다처럼 한 명은 앞자리로 한 명은 뒤 트렁크로 기어오르고 굴러다니느라 정말 난리도 아니었지. 유달리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이어졌어. 자리에 앉아 스스로 양말과 신발을 신으라고 이야기하는데 역시나 너희끼리 웃고 떠들기 바쁘더라.
5분쯤 기다렸을까. '양말 신고 올라가자'는 '얼른 양말 신으라니까!'로 바뀌었고, 여전히 장난치고 질문하는 1호 정강이를 찰싹 쳤어. 그러자 순간 고요. 1호가 물었지.
"엄마, 지금 때린 거예요? 때린 거면 미안하다고 해 주세요"
엄마는 당황했지만 때렸다는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아닌데? ...격려한 건데?"
그러자 1호 너는 약간 묘한 표정으로 물었어.
"격려가 뭐예요?“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거"
잠시 생각해보더니 1호는 이렇게 말하더라.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이라서 담기지 않지만, 너의 말투로 보아 진심이 아니었어. 엄마를 놀린 거지. 그렇게 말하고 실제로 열심히 양말을 신지도 않았으니까. 당시에 엄마는 눈치채지 못했단다. 이 순간을 잘 모면했다고 안심하기까지 했다니까. 하지만 이 대화를 옆 자리에서 주의깊게 지켜보던 2호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어. 2호 넌 상황놀이 할 때처럼 목소리를 바꾸어서 약간 장난스럽게 말했지.
"아니에요. 엄마 그건 격려가 아니었어요.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제야 알아챘어. 그리고 바로 사과했지.
"맞아. 방금 격려가 아니었어. 1호야 미안해. 엄마가 더 기다리고 너희를 도와줘야하는데 그러기에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야. 그렇다고 찰싹 때리면 안 되는 거지. 2호 말이 맞아. 미안해."
이렇게 말하니 너희는 비로소 차에서 내려서 스스로 올라가더라. 산책로와 천변을 누빈 게 무색하게 자기 전까지 또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말야.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 1호 네가 자기 전 엄마 목을 감아 안고 귓가에 속삭였어.
"엄마, 아까 차에서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빠와 이 장면들을 떠올리며 두 마음이 들었어.
1) 너희가 불편한 걸 섬세하게 느끼고 솔직하게 표현해주어 다행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애들 잘 키우고 있는 것 같다.
2) 아이들을 속이거나 진심을 숨기기가 이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너희를 돌보는 게 정말 만만치 않겠다.
미운 네 살이란 말이 이래서 생긴 걸까? 이제 시작인 것 같아. '왜'로 시작하는 질문은 이미 하루에 수백개씩 하고 있고, 앞으로 너희가 잘못을 따지고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 부모라는 권위로 누르거나 어른이라는 방패 뒤에 숨지 않을게.
너희가 울고 떼를 쓰면 엄마아빠가 이렇게 말하지.
"네 마음이 어떤지, 원하는 게 뭔지 알려줘. 그래야 엄마아빠가 너희를 좀더 잘 도와줄 수 있어"
엄마에게 너희도 똑같이 부탁했구나.
"엄마 마음이 어떤지, 원하는 게 뭔지 알려주세요. 그래야 저희도 엄마아빠를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어요. 그렇게 믿음과 존중을 듬뿍 받고, 맑고 당당하게 자라서 세상으로 나아갈게요.“'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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