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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가 안전하게 하루하루를 맘껏 살아갈 수 있게 도울게.
    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2022. 11. 1. 18:15

    얘들아, 오늘은 너희 둘 모두를 그리며 글을 써.


    요즘 엄마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단다. 엄마 목은 너희가 매일 놀리는 부항자국으로 뒤덮였고,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했잖아. 혼자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말부터 독감과 몸살로 안 아픈 데가 없구나. 쉬고 잘 먹어도 회복되기보다 현상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무기력감이 엄마를 사로잡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참 무거워. 훗날 너희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지난 주말에 많은 형누나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거든. 

     

    그것 말고도 너희에게 설명해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어. 얼마 전 너희가 나무블록 놀이를 함께 하고 있을 때였지. 요즘 너희는 도로와 바다와 산이 있는 판 위에 건물을 짓고 여러 탈 것들로 상황 놀이하기를 즐기잖아. 2호가 배를 맡았는데 '바다에 가라앉고 있어요 도와주세요~'했지. 그러자 1호가 '거긴 바다라서 도로가 없으니까 폴리는 구해줄 수 없어요. 대신 헬리가 사람들을 구해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요!'라고 말하더라. 


    맞아. 헬리가 구해줘야지.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는데 그 장면을 지켜보던 엄마는 할 말을 잃었어. 8년 전 배가 가라앉는데, 많은 헬리콥터들이 현장으로 날아갔는데,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구해주지 못했거든. 이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사실대로 이야기해줘야 할까?

    이렇게 멈칫한 적이 또 있었지. 함께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우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배편 패키지를 봤을 때였어. 너희는 배 위에서 치킨도 먹고 아부아(우리 자동차에 너희가 붙인 이름)도 같이 갈 수 있어서 무척 좋겠다고, 배 타고 제주도에 가자고 했지만 엄마 아빠가 그저 먹먹하게 '이건 안 돼'라고 했던 게 바로 그 사건 때문이야.

    무탈해 보이는 삶은 언제든 쉽게 깨어져. 우리는 운명이나 병이나 자연재앙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까. 하물며 사람이 만든 사고로 우리의 삶이 끝나고, 그걸 바라보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시선이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엄마는 아직 잘 모르겠어.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올리는 일도 조심스럽고 두려워.

    며칠 동안 이 마음을 품고만 있다가 오늘 엄마의 든든한 대화 동료들과 나누었어. 새벽이었는데 모두 함께 기도하고 눈물 흘렸지. 슬픔과 막막함에 압도됐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희미하고, 일상이 위태롭게 느껴질 때 무엇에 기대야 하나.

     

    엄마 앞에 떠오른 건 너희였어.
    한겨울에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붙을 정도로 하루 종일 놀고도 밤이면 '더 놀고 싶단 말이에요'라며 졸린 눈을 비비는 너희
    아침이면 부활하듯 깨어나 또 빛나는 하루를 보내는 너희
    형님들만 먹을 수 있다는 파와 구운 마늘을 먹고는 '엄마! 제가 드디어 해냈어요!'라고 뿌듯해하는 너희
    더 이상 엄마가 골라주는 옷은 안 입고,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솔직히 엄마가 보기엔 이상했어. 둘 다)  한참 고민해서 골라 입고 패션쇼를 하듯이 으쓱대며 걷는 너희
    그리고 그 마음에 드는 옷의 바지 무릎에 구멍이 날 정도로 신나게 뛰는 너희


    그런 너희가 안전하게 하루하루를 맘껏 살아갈 수 있게 도울게. '안 돼'라는 말 대신 '괜찮아. 해 봐'라고 격려할게. 그리고 엄마도 우울함에 지지 않고, 매일을 후회 없이 맘껏 잘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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