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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괜찮다고 말해주기
    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2022. 10. 26. 05:15

    1호야,

    얼마 전 엄마 휴대전화 용량이 꽉 찼다는 알람이 떴어. 다른 건 별 거 없고 너희 사진과 영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뭐 지워야 하나 살펴보다 1년 전쯤의 영상을 보게 됐어.

     

    초여름, 우주는 공원 캠핑의자에 앉아 할머니가 쥐어 준 자두를 먹고 있어. 돌아보면 당시 두 돌이 되었는데도 네가 엄마 기대만큼 말을 잘하지 않아서 조금 조바심이 났던 것 같아. 자두가 시지는 않은지, 통째로 먹기 힘들지는 않은지 자꾸 말을 시키고 있더라고. 넌 맛있게 자두를 먹으며 귀찮은 듯 고갯짓으로 반응하다 마지막에 이렇게 말해.

     

    갠차나아~

    어찌나 단호하고 낭랑한지. 그 말을 듣고 엄마는 말문이 막혔어. 얘, 말할 수 있구나! 다 괜찮은데 엄마 혼자 전전긍긍하고 자꾸 애타서 물어보고 답을 기다리고 눈을 못 떼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야.

     

    그 후로도 넌 꽤 위험하고 재밌는 행동을 많이 했어. 높은 데 기어오르고 뛰어내리는 건 일상이고, 울고 떼쓰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아무 데서나 드러눕기도 했잖아. 엄마는 곁에서 발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말이야. 요즘은 발음이 더 정확해져서 '괜찮아요 엄마'라고 하지.

     

    그 괜찮다는 말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몰라. 물론 있는 그대로 듣거나 안심하진 않아. 괜찮다고 하면서 다치거나 곤란한 적이 꽤 많았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너의 ‘괜찮다’는 말을 이렇게 통역해서 듣는단다.

     

    '엄마, 해보고 싶어요!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제가 정말 괜찮게 옆에서 지켜주세요.'
    '엄마, 날 믿어주세요!'
    '괜찮다고 지지하고 응원해주세요!'

     

    이렇게 애쓰지만 엄마는 걱정과 불안이 더 익숙해서, 앞으로도 괜찮을 수 있을지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 언젠가 네가 해맑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대신 '괜찮은 걸까요?'라고 불안해하는 날도 오겠지.

     

    그래도 말이야. 영상 속 네가 말했듯이 괜찮을 거야.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네 말이 마치 주술처럼 엄마를 안심시켜줬나 봐. 네가 불안을 알게 되는 어느 날, 그래서 걱정에 가득 차서 엄마에게 괜찮을지 물어오면 엄마는 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괜찮아. 괜찮을 거야.

     

    참! 휴대전화 용량 2 테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었나? 엄마가 커피 두 잔 덜 마실 테니 앞으로도 많이 도전하고 떠들고 놀자. 기록은 너를 위한 것이자 엄마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해. 엄마가 지칠 때 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어김없이 기운이 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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