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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은 특별한 네 번째 생일 파티
    아이들을 관찰하다 (육아일지) 2023. 8. 22. 20:12

    "얘들아, 올해 생일이 일요일이네? 뭐 하고 싶어?"

     

    아이들의 생일 한 달 전, 달력을 넘겨보니 마침 당일이 일요일이었다. 뭘 하며 보내고 싶은지 슬쩍 물었다. 선물은 진작에 '스파이더맨 수트'로 정해졌다. 좋아하는 실내놀이터나, 어린이집 친구들이 즐겨 간다는 수족관이나 놀이공원에 가자고 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누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사람들이 놀러오면 좋겠어

     

    뭐라고? 언제? 어떤 사람들이? 우리 집에? (도대체 왜?)

    응. 생일에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고 놀면 좋겠어.

     

    아이들끼리 친한 집과 이웃, 또 우리 지인이면서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초대 연락을 했다. 징검다리 연휴라 아쉽지만 어렵겠다는 답이 많았지만 몇 명이 되었든 조촐하게나마 마련하기로 했다. 실은 우리 부부도 지인이 자기 생일에 매년 여는 하우스오픈 파티에서 만났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두 달 전, 처음이자 마지막 하우스 오픈 파티로 무작위의 지인들이 와서 재밌게 놀다 간 적도 있었다.

    뚝딱 만든 초대 이미지

    생일날 아침, 남동생이 스텝을 자처하며 달려와 주었다. 든든했다. 그리고 삼삼오오 손님들이 각자의 스케줄에 맞추어 오고 갔다. 점심은 배달음식으로 다 같이 먹고, 그 외엔 웰컴 드링크(오미자 에이드)와 웰컴 푸드(제철과일) 정도를 준비했다. 띵동~ 벨이 울리면 아이들이 현관으로 달려가 '어서 오세요' 손님을 맞이하고 곧이어 작은 쟁반에 웰컴 드링크와 웰컴 푸드를 담아 대접했다. 정신이 없어서 이 과정을 기록으로 못 남긴 게 참 아쉽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늘 우리 가족뿐이었고, 오가는 말은 적었다. 주로 TV 소리가 집안 공기를 채웠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집에 방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대학생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면, 그 집의 문화를 조심스럽게 어깨너머로 눈에 담았다. 약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책도 찾아 읽었다. 테이블 매너나 정리나 집안일 같은... 누군가는 집에서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익혔을 지혜를 글로 배웠다. 그래서 어찌어찌하긴 하지만 여전히 어색할 때가 많다.

    아이들은 그저 존재로 손님들을 반기고, 우리가 준비해 놓은 음료와 핑거푸드를 기쁘게 내놓았다. 이 경험이 내가 이번 생일에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준 가장 큰 선물 같다. 누군가 자신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기꺼이 와 주고, 물질적인 선물-애초에 초대할 때 사양한다고 덧붙였다-이 아니라 관심과 시간을 함께 해주는 경험 말이다.

    아이들은 손님들과 대화 나누고(주로 자기들 장난감 소개), 손님들은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며 감탄해 주고 정성을 다해 책을 읽어주었다. 몇몇이 아이들 손님과 물총놀이와 블럭놀이를 하는 사이, 우리 부부도 지인들과 오래간만에 수다다운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사이사이 손님들이 새로 왔다 싶으면 아이들이 조용히 없어졌다. 그리고 몇 분 뒤, 우리가 아침에 선물한 스파이더 맨 수트를 입고 갑자기 나타났다. 손님들은 우리더러 시킨 거냐고 물어봤지만, 정작 우리가 제일 놀라고 (도대체 왜?) 약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녀석들의 깜짝쇼임을 눈치챘다.

     

    장바구니에 100번쯤 넣었다뺐다 큰맘 먹고 선물한 스파이더맨 수트

     

    저녁 8시, 모든 손님들이 떠나고 함께 정리를 마친 후에 두 녀석은 '하아~ 행복했어. 내년에도 이렇게 하면 좋겠어요!'라며 선수를 친다. 아무래도 생일파티의 첫 단추를 심하게 잘못 끼운 것 같다. 이후로 아이들도 우리도 돌아가며 단단히 몸살을 앓았다. 몇 주가 지난 지금도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

     

    하지만 내년에도 나는 사람들을 초대할 생각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더불어 우리도 그날 하루만큼은 사람들 안에서 양육하고, 그간의 육아고충을 격려받는 시간이었으니까. 머리가 커져서 파티를 열어준대도 싫다며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날이 결국엔 오겠지. 그러면 조촐히 '부모가 되기로 한 우리의 결정'을 축하하면 될 일이다. 그전까지는 신나게 축하받고 감사를 표현하는 경험을 같이 하고 싶다. 그나저나 당장 내년엔 녀석들이 어떤 갈라쇼를 준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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