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정착하고 싶은 블로거의) 온라인 유랑기책과 나를 관찰하다 2022. 11. 4. 05:13
한때 서버비용을 내고 도메인을 사서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했다. 회사를 차린 것도 아니고, 학부생 신분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지만 암튼. 홈페이지 메뉴는 잡기장과 독서노트, 답사기록 게시판과 방명록(제로보드?!)이었다. 학기에 한번 있었던 과 답사를 다녀오면 꽤 정성스레 업로드했다. 망가지기 전의 충남 신두리 사구 해안과 건축기록이 기억에 남는다. 6호선이 개통한 직후에 모든 역을 일일이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뒀는데 사진 속 월드컵 경기장은 프레임만 겨우 갖춘 상태다.
졸업 즈음해서 홈페이지는 문을 닫았기 때문에 서랍 깊숙히 넣어둔 외장하드를 꺼내 열어봤다. 홈페이지에 넣으려고 만든 단추나 레이아웃 디자인 파일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당시 '나모' 머시기였나 에디터를 쓰다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아 html과 포토샵을 직접 공부했다. 지금 보니 웹 콘텐츠 제작과 디자인, 퍼블리셔 등을 혼자 다 했던 셈이다.
명백히 '라떼는 말야'지만, 그래도 덧붙이자면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스캔해야했던 시대다. 늘어가는 필름과 사진이 짐이 되어 용산에 가서 디지털 카메라라는 걸 샀다. 묵직한 바디에, 액정은 엄지손톱 두개만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흔치 않아 사진을 찍으면 다들 그 작은 액정에 머리를 맞대고 '우와 신기하다~'를 연발했다. 그래 맞아. 모델은 캐논의 포토샷 A20이었어.

유리에 반사된 디카. 당시 최고 사양이었는데 아마도 200만 화소. 20대 초반의 나는 왜 사진을 찍고 인화하고 글을 쓰고 웹 편집을 해서 서버에 올리는 지난한 과정을 했을까?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실감...보다는 새로운 거라면 한번쯤 해봐야 한다는 의무감과 더불어 호기심과 재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이른바 통신을 좀 해봤기 때문에, 직접 보지 않은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연결되는 경험은 많이 해왔다.
홈페이지 방명록을 인연으로 잠시 전문 웹페이지를 만들 궁리도 했다. 누군가 '같이 홈페이지 만들어보자'는 글을 남겼길래 연락했다. 같은 학교 공대 선배오빠들이었다. 혼자 나가긴 좀 무서워서 동기 친구랑 약속장소에 나갔다. 나와 친구가 서비스 기획자이자 에디터 역할을 했고, 오빠들이 사이트를 구축하고 운영할 계획이었다. 맛집 정보를 수집한다는 구실로 먹고 마시러 다녔다. 그러다 내 친구와 한 오빠가 연애를 하면서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되었지만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해 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그 후로 일상이나 정제된 글을 규칙적으로 올렸던 것은 싸이월드다. 이때부터 은근 플랫폼의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싸이월드에 올리는 글은 길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센스있어야 하며, 평상시엔 귀엽다가 이별 같은 개인적인 이벤트가 생기면 센치한 음악을 깔았다. 나름 고심하며 빛나는 순간들을 쌓았는데 언젠가부터 흐지부지.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온라인 기록'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손글씨 다이어리로 돌아갔다. 아날로그의 한계를 느낄 때면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로 기록을 남겼다. 2009년에 첫 책을 내고 이 블로그를 본격 운영했다. 책이 건강관리에 대한 내용이라 생활단식과 조미료 안 쓰는 맛집 정보를 올렸다. 당시만해도 사례를 받고 후기를 써주는 문화는 없었고, 순수한 건강맛집 정보 전달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음식점들은 계속 생기고 망한다. 꾸준히 찾아 다니고 새로 써야하는데 직장생활의 영역 밖까지 그럴 마음은 없었다. 자연스레 블로그에 나도 뜸해졌다. 이따금 여행을 다녀오면 그 기록만 남겼다.
근교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아이들 만난 준비를 하며 다시 기록의 열망이 고개를 든다. 네이버 블로그는 묘하게 손이 안 갔다. 어느새 개인의 순수한 기록이라기보다 블로그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치열하게 팔리는 글을 쓰는 장이 된 것 같았다. 편집 툴도 어딘가 무겁고, 경쾌한 문장 서너개에 이모티콘 반짝반짝 스타일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네, 핑계라면 핑계입니다.)
그래서 찾은 게 브런치. 2017년에 만들고 틈틈이 써서 글이 100개 남짓 쌓였다. 그런데 이것도 약간 아쉽다. '출간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수식어답게 글을 쓰면서 이미 완성된 형태의 책과 목차를 떠올리게 된다. 듣자하니 역시 브런치 스타일의 제목과 글 형식도 있단다. 알게 모르게 나도 그 사실을 의식해서 쓰다가 말고 쓰다가 만다. '좋아요'는 이따금 눌리는데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진 않는다.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라, 제 글에도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매일을 가볍고 무심하게 기록하고 그게 아카이빙이 되게 할 순 없을까? 매일의 기록을 티스토리에 남기는 한 선배가 떠올랐다. 네이버는 아닌데 괜찮네? 그리하여 티스토리를 만들게 되었다. 네이버 검색도 욕심이 나니 프라이버시 지키면서 공유되길 원하는 글은 블로그에 걸치고, 책 형태로 묶일만한 내용이다 싶으면 브런치에 세련되게 다듬어 올리고. 좀 피곤해도 이게 현재로서 찾은 대안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을 고민하기 전에 매일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을 남기는 게 최우선인 것도 안다.
그간 돌아다니느라 지치고 고단한 중고 블로거의 온라인 유랑기 끝.
'책과 나를 관찰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00주 / 올리버 버크먼 (0) 2023.01.27 알아서 할게요 / 임포스터 : 리사 손 (0) 2022.12.17 올해 스타벅스 플래너는! (0) 2022.11.16 [D+6] 출산 후기 / 삼 년 만에 발행하는 임시저장글 (0) 2022.10.28 감히 세계여행을 꿈꾸는, 직장인 둥이엄마입니다! (2) 2022.10.23